두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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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소개

마을소개 및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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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편리(銀片里)

연화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은편리는 경주 남면에 속한 때에는 음변이라 불리었는데 오후에 산그늘이 빨리 내려오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비가 오면 이 마을의 흙이 사금빛을 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치술령 뒤의 은정골에서 은을 캐내어 은편에 와서 거래를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마을이름이 은편으로 불렸을 것으로 보는 설도 있고 한때 은편이라 불린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905년 경주군에서 울산군으로 이속되면서 마을이름이 은편으로 불리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시에도 은편으로 나타났으며 1981년 7월 1일 지금의 행정리인 은편 상ㆍ하리로 분리되었다.

만화리(萬和里)

치술령과 국수봉아래 자리 잡고 있는 만화리는 삼한시대에는 마등오 촌락이 있었고 신라시대에는 경주 남면의 비자현이었다가 정조 때는 비조항리가 되었다.

1911년 울산군 두북면에 속해 있을 때는 임동과 비조, 이전 등 3개동으로 갈라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시 임동과 비조를 합하여 만화리라 부르고 이때부터 임동을 율림이라 불렀으며 옻밭과 비조를 합하여 칠조라 부르게 되었다.

이전리(泥田里)

이전리는 마을이 산자락 밑에 자리 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 장성과 당지가 있다.

두 마을 모두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 장마철에는 신을 신고 다닐 수 없을 만큼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에 "진밭" 이라는 의미에서 이전리라고 붙여졌다. 경주군 남면 비자현에 속하였다가 정조 때에 독립되어 이전이라 하였으며 1911년에는 두북면에 편입되어 이전동이라 불렸고 장성과 당지의 2개 행정마을로 나뉘었다.

구미리(九味里)

면사무소 등 기초행정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두동면의 중심지로 국도31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월평리가, 북쪽으로는 봉계리, 남쪽으로는 은편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곡댐 수몰지역인 삼정리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초기에는 구시(仇沙)라 하였고 경주 남면 때에는 밀구미동(密仇味洞소)이라 불리었으며 밀구미란 대밀과 구미가 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구시라 함은 목조(木槽)를 뜻하며 지역이 굽은 데서 나온 말이다.나중에 구시가 구미로 변하였지만 뜻의 의미에는 변함이 없다. 1905년 울산군에 이속되었다가 1911년 두북면 구미동에서19 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구미리라 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천전리(川前里)

두동면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천전리는 두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마을 중심으로 대곡천이 흘러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방리마을의 백련정(白蓮亭) 부근에 녹문(鹿門), 도화동문(挑花桐門), 세심정(洗心亭) 등 암각이 되어 있어 옛날 풍류묵객들이 산자수려한 경관을 즐긴 곳이다.

언양면 대곡 반구대 암각화지점까지 흘러 내려가는 대곡천이 구곡(九曲)으로 굽이치고 있어 이곳을 구곡천이라고도 부른다. 경주군 남면 때는 내전이라 하였고 울산군두 북면으로 편입되면서 천전이라 불렀다.

1906년에 두북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시 못안, 신당, 진티, 장천, 방리 등을 통합하여 천전리가 되었으나 대곡댐 건설사업 추진으로 방리는 행정부락이 없어졌으며 백련정, 수려한 자연 경관은 사라지고 없다.

삼정리(三政里)

당초 경주군 외남면 지역으로 우리군 두북면에 속했을 때인 1911년에는 삼정동과 신정동으로 갈라졌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시 삼정과 신정의 양동을 합하여 다시 삼정리라 칭하였고 태화강 상류인 구미천과 미호천, 그리고 전읍천의 세 갈래냇물은 상삼정에 합쳐진다.

이곳에 우물처럼 폐인 장소가 세 곳이 있어 삼정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설과 이 마을에서 3명의 정승이 태어났기 때문에 삼정이라 불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지만 그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울산시만의 맑은물공급사업으로 추진되는 대곡댐건설사업편입부지에 속한 이 마을은 2001년 6월 30일자로 전 마을 주민이 인근 타 읍면으로 모두 전출하여 우리의 공부상 역사의 한 장만으로 남게 되었다.

봉계리(鳳溪里)

두동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계리는 경주군 내남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쪽은 월평리, 서쪽에는 형산강 상류 하천, 두서면 활천리산과 접하여 동쪽에는 먹장산이 있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며 남으로는 구 삽교저수지(일명두들지)가 있다.

봉계리라는 명칭은 신라시대부터 불리어왔으며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 시에 봉계 봉계동에 내남면 하명곡의 일부를 합하여 봉계동이라 하였는데 봉계동은 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강씨들이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봉(鳳) 자가 길운하다 하여 봉(鳳)에 강태공이 위수에 낚시를 드리운 옛일을 연상하여 계(溪)를 붙여 봉계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월평리(月坪里)

월평리는 치술령과 먹장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치술령에서 발원한 큰골의 물과 먹장산에서 흘러오는 백양곡의 두 물줄기가 월평천을 이루어 형산강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경주 남면 때에는 지금의 월평리와 봉계리를 합하여 묵장(墨匠)이라고 부르다가 뒤에 상묵정과 하묵정으로 갈라져 월평리를 상묵정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당시 이곳에는 이 마을에 먹을 만드는 먹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행정구역이 경주군 외남에서 울주군 두북면으로 이속될 때 월평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월평은 높은 산에서 보면 산에 둘러싸인 들판이 흡사 한문의"월(月)"자 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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