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면 연혁
울주군 두서면이며 행정 리동은 17개이다.
삼한시대 ~
조선시대
- 신라(新羅
건국기 사로 육촌(斯盧 六村)가운데 하나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일부였는데, 고허촌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32)의 관제 개편 이후 사량부(沙粱部)라 불려졌다.
- 고려(高麗)
태조(太祖) 23년(940)의 지방제도 개편 때 사량부는 다시 경주(慶州)의 남산부(南山部)로 되었다. 그 후 고려 현종(顯宗) 9년(1018)이후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주는 동경(東京)·경주대도호부(慶州大都護府) 및 경주목(慶州牧)으로 바뀌어졌다.
- 조선(朝鮮)
태종(太宗) 13년(1413)에는 경상좌도(慶尙左道) 경주부(慶州府) 남면(南面)이었으나, 정조(正祖) 원년(1777)에 이르러 남면이 외남면(外南面)과 내남면(內南面)으로 나뉠 때, 외남면(外南面)에 들게 되었다.
1900년대 ~ 현재
- 근대
- 대한제국(大韓帝國)
- 광무(光武) 10년(1906)에는 외남면(外南面)이 경주(慶州)로부터 분리되어 경상남도(慶尙南道) 울산군(蔚山郡)에 이속되면서 두북면(斗北面)으로 되었다.
- 1908년경에
- 두북면(斗北面)은 언양 - 경주간 도로를 중심으로 분면(分面)되었는데, 동쪽은 두동면(斗東面)으로 되었고 서쪽은 두서면(斗西面)이 되면서 비로소 우리 면이 탄생하였다.
- 1914년
- 일제하(日帝下)의 행정구역 개편때 내남면의 고사리(古舍里)일부가 우리 면에 편입되었으나, 구량리(九良里)와 차동(次洞) 각 일부는 언양면(彦陽面)으로 이속되었다. 또 1973년에는 교통의 편의성에 따라 소호리(蘇湖里)가 상북면(上北面)으로 이속되었다.
- 현대
- 1995년 1월
- 시·군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두서면으로 되었다가, 1997년 7월 15일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이 되었다.
- 2001년 현재
- 울주군 두서면이며 행정 리동은 17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