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읍 연혁
삼한시대 ~
조선시대
- 1469년
- (조선조 예종 1년)「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언양현(彦陽縣)의 남쪽에는 대토리(大吐里)와 가을천리(加乙川里)만 표기(表記)된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을천리는 지금의 중남지역에, 대토리는 삼동면 지역에 비정(추정) 된다.
- 1567~1608년
- (조선조 선조 년간) 때는 울산도호부에 속하였고
- 1609년
(광해군 1년) 「경상도 언양현호적대장(慶尙道彦陽縣戶籍大帳)」에는 임내(任內) 언양현에는 천남리(川南里:중남면 일대인 듯함)로 표기되어 있다.
- 1612년
(광해군 4년) 때는 언양현에 속하였다.
- 1711년
(숙종 37년) 신묘년식대장(辛卯年式大帳)에는 가을천리(加乙川里), 덕천리(德泉里), 쌍수정리(雙水亭里)의 3개리로 나뉘었다.
- 1798년
(정조 22년) 무오년식대장(戊午年式大帳)에는 덕천역동(德川驛洞), 덕천민동(德川民洞), 쌍수정리(雙水亭里), 평지리(坪地里), 가을천리(加乙川里)의 5개리로 구분 되였으며,
- 1777년~1800년
(순조 13년) 계유년식대장(癸酉年式大帳)에는 교동리(校洞里), 덕천리(德泉里), 평리(平里), 쌍수정리(雙水亭里), 대야리(大野里), 방기리(方基里)의 6개리로 분할 되었으며,
- 1813년
(철종 9년) 무오년식대장(戊午年式大帳)에는 교동리(校洞里), 덕천리(德泉里), 평리(平里), 쌍수정리(雙水亭里), 화산리(華山里), 가천리(加川里), 방기리(方基里)의 7개리로 구분됨을 볼 수 있다.
- 1861년
(철종 12년) 신유년식대장(辛酉年式大帳)에는 교동리(校洞里), 덕천리(德泉里), 평리(平里), 쌍수정리(雙水亭里), 화산리(華山里), 가천리(加川里), 방기리(芳基里)의 7개리로 구분되어 있다.
- 1894년
(고종 31년) 언양현 중남면 덕천리(德泉里), 평리(平里), 쌍수정리(雙水亭里), 가을천리(加乙川里), 방기리(方基里)의 5개리로 구분되었다.
- 1895년
(고종 32년 대원군) 때는 동래부에 속한 언양군 중남면이었다.
1900년대 ~ 현재
- 근대
- 1911년
- (일제시대)에는 언양군 중남면 교동리(校洞里), 평리(平里), 수남리(水南里), 신화리(新華里), 가천리(加川里), 장제리(長堤里), 상천리(象川里), 상방기리(上芳基里), 하방기리(下芳基里)의 9개리로 분할되었다.
- 1914년
- (일제시대) 울산군 중남면 교동리(校洞里), 신화리(新華里), 가천리(加川里), 상천리(象川里), 방기리(芳基里)의 5개 법정리(法定里)로 정하였다.
- 1933. 1. 1.
- 중남면과 삼동면 통합(경남도령 제17호)하여「삼남면」이라 칭하였다.
- 1949. 6. 20.
- 공비들의 방화로 면청사가 소실되었다.
- 현대
- 1950. 8. 10.
- 구청사로 청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구청사: 중남로64)
- 1963. 3. 1.
- 삼동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85. 11. 1.
- 청사노후로 인하여 면청사를 신축 준공하였다.
- 1989. 4. 1.
- 삼동출장소가 삼동면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 1995. 1. 1.
- 울산시·군 통합으로 울산시 울주구 삼남면이 되었다.
- 1997. 7. 15.
- 광역시 승격에 따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으로 되었다.
- 1998. 10. 30.
- 울주 삼남지를 발행하였다. *울산에서 두 번째, 삼남면에서 최초로 편찬
- 2002. 7. 10.
- 삼남면지 증보판을 발행하였다.
- 2017. 1. 20.
- 현청사를 신축 준공하였다. (*현청사: 작괘들길2)
- 2017. 3. 16.
- 현청사를 개청하였다.
- 2020. 11. 1.
- 삼남면에서 삼남읍으로 승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