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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소개

마을소개 및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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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리

이 지역의 위치가 고헌산 앞이 되므로 산 앞 또는 산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동리, 궁평리를 병합하여 산전리라해서 울산(울주)군 하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되었으며, 상북면의 면소재지로 상북면사무소(1933년 설립), 상북파출소(1932년설립), 상북우체국, 상북중학교(1953.6. 설립, 2020년 향산마을(구 향산초등학교 자리)로 이전 신축), 경의고등학교(1966.3. I0.개교, 상북고등학교 개칭)가 있다.

산전

  • 지역여건 : 면 소재지 마을이며, 24호 국도를 끼고 있음.
  • 면 적 : 360Ha (답 - 59.6 , 전 - 11.5, 기타 - 288.9)
  • 문화재 : 울산 구 상북면사무소(국가지정 등록문화재)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행정복지센터, 마을회관, 주민자체센터, 경로당(산전, 상북분회), 파출소, 농협, 우체국
  • 종교시설 : 상북교회

도동

  • 지명유래 : 이웃마을 사람들이 많이 통하는 마을이라 하여 도동이라 호칭함.
  • 지역여건 : 면의 동쪽 0.5 km 지점에 위치하고, 24호 국도를 끼고 있음.
  • 면 적 : 296 Ha (답 - 43.7, 전 - 9.5, 기타 - 242.8)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경로당(도동), 울산 경의고등학교, 상북초등학교, 상북유치원, 울산과학고등학교
  • 종교시설 : 금강사, 언양온누리교회

마을소개

  • 1.궁평: 마을의 생긴 모양이 활과 같이 생겼다는 데서 궁평이라 호칭함.
  • 2.비심 : 도동과 궁편 사이에 있었던 마을
  • 3.송락골「송락곡 」 : 신라 때 부근에 영구사라는 사찰이 있어 승려들이 송락을 쓰고 이 마을로 왕래하였다 하여 송락골이라 호칭함.
  • 4.만당걸 : 도동 남쪽에 있는 내로서 신라 때 하천하부에 인구가 많이 살고 있었다 하여 만당걸이라 호칭함.
  • 5.오룡골 「오룡곡 ,오령골」 : 도동 동쪽에 잇는 골짜기. 지형이 다섯 용의형국 이라 함.
  • 6.회미기 : 궁평 서북쪽에서 궁근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지형이 회목처럼 잘록하다함.

지내리

큰못 안쪽이 되므로 못 안 또는 지내라 호칭하고, 본래 언양군 하북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내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하북면에 편입되었다가,1928년 상북면에 편입되었음. 500년 전 축조한 23,400평짜리 못 안못 또는 큰못이 있으며 송내골, 당꼭못, 대리못, 제궁곡못 등 저수지가 많다.

신리

  • 지명유래 :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리" 라 칭함.
  • 지역여건 : 면의 동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언양읍과 접해있음.
  • 면 적 : 238Ha (답 - 72.9, 전 - 20.5, 기타 - 144.6)
  • 문화재 : 지내리 지석묘(시지정 기념물)
  • 특 산 물 : 오리쌀, 고추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신리)
  • 종교시설 : 신광사

대리

  • 지명유래 : 지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대리" 라 호칭함.
  • 지역여건 : 면의 동쪽 3.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큰못이 있어 못안 이라 함.
  • 면 적 : 223.8Ha (답 - 79.2, 전 - 20.5, 기타 - 114.1)
  • 특 산 물 : 오리쌀, 울산송엽주, 고추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대리,명동), 울산축협 가축시장

마을소개

  • 1.붉은디기 : 대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흙이 붉음.
  • 2.재궁곡 : 옛날 이 마을에 동래 정씨의 재실이 있었다 하여 재궁곡 이라 하고 지방사람의 방언으로 "쟁골" 이라도 호칭함.
  • 3.명동(明洞) : 가장 명랑한 부락이라 하여 "명동" 이라 호칭함.
  • 4.발랑말 : 지내리에 있는 "골새" (대리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서 서쪽으로 산중턱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말을 타고 놀며 활 쏘기를 하였다는 곳이다.
  • 5.상천배미 : 신시리비알 서쪽에 있는 논. 언양 고을의 향청에 딸려있었음.
  • 6.하동(下洞) : 붉은디기 동남쪽에 있는 마을.
  • 7.남은재(南隱재) : 조선 때 선비 남은정택(南隱鄭택)의 묘실로서 후손이 추모하여 세운 재실이다.

향산리

 

향산

  • 지명유래 : 뒷산이 작약봉이라 약의 향기가 높다 하여 "향산리" 라 호칭함. 본래 언양군 하북면의 지역으로서 1914 년 행정구역의 폐합으로 능산리를 병합하여 향산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하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되었으며,향산초등학교(1947.9. 개교, 2016.2.29. 폐교, 현재 상북중학교가 이전 신축(2020.8.10.))가 있다.
  • 지역면적 : 면의 동남쪽 0.5km 지점에 위치하고, 24호 국도를 끼고 있음.
  • 면 적 : 118Ha (답 - 28,4. 전 - 5,7. 기타 - 84,3)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상북중학교, 경로당(향산)
 

능산

  • 지명유래 : 유혈공 현산 김 씨의 묘가 앞산에 있다 하여 능산 이라 호칭함. 본 마을은 웃마실(웃마을), 안마실(안마을), 양달마실(양달마을), 갱빈 각단, 아리몰(아랫마을)의 다섯으로 나뉘어져 있다.
  • 지역면적 : 면의 동쪽1.5km 지점에 위치하고, 언양읍과 접해있고, 24호 국도를 끼고 있음.
  • 면 적 : 130Ha (답 - 47,8. 전 - 6,5. 기타 - 75,7)
  • 문화재 : 향산리 지석묘(시지정 기념물)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능산,청구골든맨션,청구가든)
  • 종교시설 : 연화사, 새생명교회
 

마을소개

  • 1.좌랑공비와 표절사 : 좌랑공 정대업은 이조 선조27년(1594)년에 울주군 상북면 능산리에서 출생했다. 29세때 무과에 급제하여 북방위수장으로 있다가, 인조41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자, 혼연히 일어나 윤천록과 더불어 장사 수십인을 모병하여 경기도 이천에서 적을 맞아 싸우다 적탄을 맞고 1637년 정년 44세를 일기로 장렬한 순국을 하였다. 묘소는 동래정씨의 이곳 선산에 있으며, 그 공적을 밝혀 묘전에 비를 세우니 그 비명을 좌랑공비라 전해온다. 좌랑은 정육품벼슬 즉 사대부 다음가는 낭관직이다. 또 호국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지어 받드니 그 이름 표절사라하며 묘의 북쪽에 있다. 그 후 나라에서는 공의 충성된 공을 찬양하고 선무랑호조좌랑의 벼슬을 내리고, 순조11년(1811)에 표절사라 하여 지금에 내려온다. 고종 때 철폐된 것을 무신년에 다시 중창, 제사를 지내고 있다.
  • 2.능산정사 : 후손들이 그 선조들을 위하여 세운것으로 동쪽에 열친헌이며, 서쪽을 수희실이 하고 문은 지엄이라 명명했고 이의락이 쓴 글이 있는 정재이다.
  • 3.화장산 : 상북면 향산리 능산부락과 언양면 서부리, 송대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85m.(언양면 송대리 참조)
  • 4.함박동 : 향산 마을과 윗능산 마을(웃마실)의 뒷산이며, 산모양이 함박꽃과 같다고 한다.
 

천전리

내 (남천)가 앞에 흐르므로 내 앞 또는 천전이라 호칭함.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전리라해서 울산(울주)군 상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웃각단.중간각 단,끝각단으로 구성돼 있고, 마을앞 갱빈들에는 큰 골재 채취장이 있다.

천전1리

  • 지역여건 : 면의 동남쪽 4km 지점에 위치하고, 경동 청구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어, 98년 천전 1, 2,리로 분동
  • 면 적 : 2834 Ha (답 - 56, 전 - 7, 기타 - 171)
  • 특 산 물 : 배, 미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천전), 울산운전면허시험장
  • 종교시설 : 용화사

천전2리

  • 지역여건 : 경동청구아파트(4개동)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8년 천전리에서 분동
  • 공공시설 : 경로당(경동청구아파트)

마을소개

  • 1.화사 와 천전석불 : 용화사는 신라 미추왕때 청앙대사가 창건함.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 15교구 말사이다. 미륵(천전석불)은 용화사에 있는 미륵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장정 (병정)이 출정할 수 없을 때 대신 군포를 바쳐야 했다.

    이 군포정치는 나중에 아주 악폐로 바뀌어서 열 다섯 살 이상의 남녀에게 모조리 군포를 바치라고 메겼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군포를 어떻게 바치느냐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뾰족한 방법도 얻지 못한 채 모두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한다는 말이 "부처님 저기 저 바위들이 모두 장정이었더라면 군포를 안 바쳐도 되련만 이렇게 많은 군포를 어떻게해서 바치라는 건지 걱정입니다 부처님 도와주소서"하고 사람들마다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예배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이 되니 석불의 두 어깨에 배필이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 전체가 모여 누가 이 베필을 갖다 놓았는지 물었을때 석불의 머리 위에 오색찬란한 서기가 공중에 가득 차더니 "여봐라 천전리 백성들은 듣거라! . 나는 미륵 존불이다. 너희들은 비록 가난할지라도 마음이 정직하여 석불앞에 기도함이 지극하고 가상하여 이 군포를 내리노니 이것으로 나라에 바치고 곤욕을 면하도록 하라" 신기롭게 여긴 동민들은 이 배필을 나라에 바쳐 곤욕을 면하게 되었고 그후 이 인형바위를 미륵이라 불렀다.

    이런일이 있고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미륵석불 앞에 극진한 정성을 드렸으며, 이조 현종때 여기에 절을 짓고 천전불당 이라하여 신도들이 소원성취를 빌고 효험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절을 다시 중창하고 용화사라 개칭 하였다.
  • 2.수옥정 : 진사 최남복이 축조한 것으로 물과 돌이 맑고 기이하고 경치가 좋다.
  • 3.노씨 열녀문 : 조선 숙종때 김차안의 처 광주노씨 의 열녀 정문임.
  • 4.만당 : 길천리 참조
  • 5.봉화산「봉수산,부로산」 : 천전리, 등억리와 삼남읍 교동리 경계에 있는 산(높이 351 m). 옛날 언양봉수대이다. 언양 남쪽 5리 지점에 있었다. 봉화산은 과거에 부로산이라 하였다. 남으로 양산군 원적산 위천에 응하고, 북은 경주 소산 (지금의 두서면 서하리 봉화산)에 응했다. 지금도 돌화현에서 봉화산 끝까지를 부로산이라 하고있다. 언양 봉수는 본래 신라때 화장산 위에 있었는데, 고려때 동래를 기점으로 하는 언양 봉수가 제2간선 중간직봉의 하나로 역할했다. 지금도 봉화산 산정에는 봉군의 숙소와 봉화를 올리던 터가 남아 있다. 부로산에는 언양현의 남쪽으로 5리에 석수사가 있었다.

등억알프스리

지형이 등어리처럼 생겼으므로 등어리 또는 등억 혹은 곶으로 양쪽으로 내가 흐르므로 곶내라하며, 옛날 이 주위에 백화가 만발하여 꽃잎이 앞내에 흘러갔다 하여 화천이라 불리 우고 있으며, 일설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이 가장 빈곤할 적에 어떤 도승이 지나가다 마을 이름을 등억이라하면 부자가 날 것이라 하여 등억리라 불리 우고 있다 함.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등억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상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 에 편입되었다. 2015년5월 이곳을 산악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마을 명칭을 '등억리'에서 '등억알프스리'로 변경하였다.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4km 지점에 위치하고, 등억 온천이 개발 중에 있으며, 삼남읍과 접해있음.
  • 면 적 : 1,513ha(전 - 4, 답 - 52, 임야 - 1,325, 기타 - 132)
  • 문 화 재 : 간월사지(시지정 기념물),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보물),간월사지남북삼층석탑(시지정 유형문화재)
  • 관광명소 : 등억 온천, 자수정 동굴, 간월산, 홍류폭포, 신불산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등억, 간월)

마을소개

  • 1.등억 신리「등억새마을」 : 등억에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마을 또는 신리라 불리우고 있음.
  • 2.간월 : 뒷산이름이 간월산 이라 해서 이 마을 이름도 간월 이라 불리움.
  • 3.간월산 : 간월산은 상북면 등억리와 이천리에 걸쳐 있는 산.높이 1,083m.약 1,500년전 이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 간월산이라 하였다 함.

    태백산맥의 한 지맥인 울주군 서부 일대에 천마산, 백운산, 고헌산, 가지산, 간월산, 천황산, 능동산, 신불산등,1,000m를 넘는 산들이 장년기로서 정상은 원정을 이루고 있으나, 간월산은 예외로 단조봉에서 북으로 산세가 절벽을 이루어 기암들이 흘립한 절승을 이루고 있다. 간월사는 간월사 또는 관월사로도 쓰는데 간월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신라의 짐덕 여왕 때에 자장율시가 당나라로 불교를 연구하기 위하여 들어가기 전에 지은 절이다. 이 절터에는 금당지석불, 석불, 석탑, 석등대 같은 우수한 석조들이 많이 남아있으나, 이 절에 있던 귀한 문화재 등이 임진왜란 때 왜병들에 의해 파괴되어 폐사 되어있던 것을 인조 12년(1635)에 중건, 명언이 다시 지었으나, 헌종 경신에 큰 흉년이 들어 폐사 되고 말았다.

    통일신라 시대 9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폐사 끝에 근년에 와서 절이 일부 복구되어 남은 문화재 등을 관리하고 있으며, 이 절의 석조여래좌상은 1960년에 qh물 제370호로 자정 하여 그 자리에 새로 불당을 지어 안치하고 있다.
  • 4.과부성 : 등억리 마을 동쪽에 묘하고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는 것이 과부성이다. 이조 제14대 선조25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인근 마을 의병들은 이 과부성으로 올라가서 왜적과 장렬하게 싸웠다. 몰변을 당한 과부성 싸움이 끝나고 나니 이 마을에는 몰 과부가 생겨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이 산을 과부성 이라고 부르게 됨.
  • 5.단조성 : 천전리와 등억리를 연결하는 해발 900m가 되는 간월산의 소 구릉상에 있는 산성이다. 주위 약 1.5km 의 토축성지 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흔적만 남아있다. 석축으로 주위가 사천오십 척 이고,성안에 천지가 있어 비가 오나 가뭄에도 물의 증감이 없다 하였다.

    산성으로 안양읍성과 같이 짝을 이루어 외적으로부터 언양을 방어 하였다. 영조 3년(1727) 박문수 암행어사가 영남을 순행할 때 이 성에 올라보고 탐복 했다고 하며, 당나라 장수가 바라보고 마치 천상성과 같다고 하였다. 이 성안에서 아군이 포위되어 몰참을 당했다고 한다.
  • 6.홍류폭포 : 등억리 간월사지 뒷편 신불산 중턱 계곡에 홍류폭포가 있다. 물줄기가 떨어지는 낙차의 높이가 1백 9척이나 되는 이 고장 유수의 폭포로서 아침햇빛에 보면 무지개같이 보인다 하여 홍류폭포라 함. 홍류폭포의 유원은 신불산 단조성 안의 정천에서 부터 시작된다.

    폭포수는 흩어져서 봄에는 무지개가 서리며, 겨울에는 고드름이 절벽에 매달리고, 위에서 흩어져내리는 물은 아래에서 눈이 되어 희게 쌓인다.
  • 7.취서(루)산 「대석산,영취산」 : 언양현의 남쪽으로 12리에 있으며 일명 대석산이라고도 하였다.(동국여지승람),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양산군 원동면 선리,하북면,지산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1,059m, 간월산, 신불산, 영추산의 총칭이다. 영추산이란 이름은 대개 큰 사찰 뒤 북쪽에 있는 산봉을 말하고 전국 어디서나 절 뒷산을 인도천축의 영취산과 같다 하여 영추산이라 이름이 붙어있다.
  • 8.신 불 산 :울주군 (삼남읍,상북면)과 양산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 높이 1,209m(이천리참조)

명촌리

옛날 이 마을 주변에 봄이면 조류가 모여들어가 요란하여 마을 이름을 명촌이라 부르면 마을이 번영할 것이라 하여 "명촌" 이라 불리우며,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광리를 병합하여 명촌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상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3km지점에 위치하고,미곡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 면 적 : 303Ha (답 - 65, 전 - 5, 기타 - 233)
  • 문 화 재 : 만정헌(시지정 문화재자료), 언양천전리성(시지정 기념물)
  • 관관명소 : 만 정 헌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명촌)

마을소개

  • 1.사 광 : 이 마을 남쪽 간월산의 기울어져가는 달빛이 아름답다 하여 "사광"이라 호칭함.
  • 2.만년각 : 간월산 동록에 자리잡은 명촌리에 "명헌" 이란 현판이 걸린 고색에 젖은 목조와가 1동(6간)이 만년각이다. 사적 제 45 호로 지정됐다. 조선 제14대 선조 15년(1572) 현장 김자간 이 경주로부터 이 마을에 들어와 자리잡으면서 세운 계림김씨의 정각이다. 자손 만대에 까지 길이 보존키 위하여 만년각이라 지어 호칭함. 약 500 년의 년륜을 가졌다고 전해오는 이 집은 또한 사리기둥으로도 이름이 있으며 울산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문화재 이다.
  • 3.남 애 : 명촌 남쪽에 있는 마
  • 4.노 산 : 명촌 서쪽에 있는 산
  • 5.안 산 : 명촌 동쪽에 있는 산.

길천리

이 마을 중앙에 행화정이란 조그마한 우물이 있어 그 우물에서 흘러가는 내가 물이 맑고 좋아서 좋은 내라하여 "길천리"라 호칭함. 본래 언양군 상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화, 후리, 안마을, 갠달, 순정, 원제를 합하여 길천리라 하고 1928년 상남면과 하북면이 병합하여 상북면으로 개칭함에 따라 상북면에 편입됨. 길천초등학교(1927.4.개교:길천공립보통학교로 개교,1938년,학년 연장을 거쳐 심상소학교.초등학교 등으로 개칭, 궁근정, 향산 초등학교를 분리함)가 2016.2.29. 도동마을에 위치한 상북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

 

지 화「이불」

  • 지명유래 : 옛날 신라시대에 거지화현 소재리라하여 지화라 불리우며, 또한 이불이라고도 호칭함. 거지화는 지금의 彦陽 인데 신라 경덕왕 l6 년에 거지화현을 개칭한 것이다. 거지화의 치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현재는 마을 앞 갱빈들에 현대컨테이너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2km 지점에 위치하고, 미곡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 면 적 : 117Ha (답 - 32.8, 전 - 9.2, 기타 - 75)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지화)
 

후 리「 뒷(딧)마을」

  • 지명유래 : 길천리의 뒷편에 있다 하여 뒷마을이라 불리 우며, 한자표기에 의하여 "후리"라 호칭함. 앞들을 바들 이라 하고 현재 못이 있는데 옛날의 집터라 한다.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2km 지점에 위치하고, 미곡중심 농촌 마을
  • 면 적 : 158Ha (답 - 61.8, 전 - 9.7, 기타 - 86.5)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후리)
  • 종교시설 : 길천교회, 길천공소, 도명사
 

오산

  • 지명유래 : 순정 동쪽에 있는 마을. 들가운데 산이 있는데 그 밑이 됨.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0.5km 지점에 위치하고, 미곡중심 농촌 마을
  • 면 적 : 154Ha ( 답 - 40.9, 전 - 11.5, 기타 - 101.6)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오산, 순정), 큰나무놀이터
  • 종교시설 : 순정공소
 

마을소개

  • 1.만 당 : 지화와 천전리에 걸쳐 있는 넓은 들. 신라시대 이불마을 거지화현에 현령이 있어 이 만당에 집이 만채가 있었다 하여 만당이라 호칭함.
  • 2.안 마을 :안 편에 있다 하여 안 마을 이라 호칭 함.
  • 3.갠 달 : 마을 동편 산이 가장 낮아서 비 온 뒤 개인 달과 같이 잘 보인다 하여 "갠달" 이라 하며, 한자표기에 의하여 제월이라 호칭함.
  • 4.순 정 : 옛날 미나리가 잘되고 정자나무가 좋다 하여 순정이라 호칭함.
  • 5.원 두 던 (원제) : 두던이 시작된 곳(언덕이 시작된 곳)이라하여 원두던이라 불리웠으며, 한자표기에 의하여 원제라고 호칭함.
  • 6.소목골「소무골 」 : 명촌리와 길천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 신라 때 이 마을에 절세 미인인 청상과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젊은 과부를 흠모하는 음흉한 사나이가 있었다.

    미인이 뒷 산기슭의 밭으로 혼자 나가서 김을 메고 있었다. 사나이는 몰래 접근해 미인을 끌어안았다. 사나이의 욕망을 막을 길 없다고 생각한 미인은 한가지 꾀를 냈다. ”옛날에 청상과부가 정을 통할 때는 소 울음을 세 번 울어야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는데 서방님은 어찌 그것도 모르셨나요?

    소 울음을 낼 때는 보이지 않는 등 너머에서 울어야 한대요. 서방님께서는 저쪽 너머에 가서 크게 세 번만 울고 오셔요”사나이는 등 넘어로 갔다. 미인은 사나이가 간다음에 생각했다. 오늘 피한다 해도 포기 할 것 같지는 않고 마을에 알려 벌을 준다 해도 얼굴 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을 터, 미인은 자기의 치마 끈을 풀어 나무에 매달려 죽기를 결심했다. 사나이는 소 울음을 그치고 뛰어나왔으나 미인은 이미 숨을 거두고 난 후 였다. 또한 일설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신라 진흥왕 때 이곳에 살던 제정승이 외딸의 사위감을 고르다 못하여 과년하게 되었는데 마침 정승도 상처를 했으므로 딸과 동거를 요구하자 딸이 골짜기에 올라가서 소의 울음소리를 세 번 내면 동거하겠다기에 제정승이 골짜기에 올라가서 소의 울음소리를 내는 사이에 딸은 자살하였다는 데서 소무골이라 부른다 함. 제 정승 집에서 100m쯤 떨어진 정송집의 요리터를 세목딩, 제정승댁의 우물을 제정샘이라 한다 함.
  • 7.충 효 사 : 길천리 후리 마을에 있다. 선조25년(1592) 임진 왜란 때 의병에 참가하여 다같이 순사한 박언복. 박인립부자를 모시고 있다. 현종 6년(1840) 언양면 반곡리에 세웠다가 얼마 후에 이곳에 옮겨 세웠다.
  • 8.바들「바드래.파두」 : 후리 앞에 있는 들판, 현재 못이 있는데 옛 날의 집터라 한다.
 

거리

옛날 신라시대에 앵기(동)이라 불리웠는데, 동리명이 좋지 못할뿐 아니라 그 후 인구가 많이 살아 면내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거리라 고쳐불렀으며,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거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상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 지역여건 : 면의 서남쪽 0.5 KM지점에 위치하고, 면의 가운데 위치한 마을.
  • 면 적 : 756 Ha (답 - 69.5, 전 - 19.8, 기타 - 66.7)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거리, 지곡)
  • 종교시설 : 대덕사
 

마을소개

  • 1.하 동 : 동리의 하부에 있다하여 하동이라 함.
  • 2.간 창 : 옛날 이 마을에 큰 부자가 있어 창고를 시냇가에 세웠다하여 간창이라 호칭함.
  • 3.대문각단 : 이조 초기에 이곳 주민들의 생활에 비하여 오씨라는 아주 큰 부자가 와서 생활한데서 부잣집 대문을 비유하여 생긴 이름이라 함.
  • 4.밤 갓 : 갓(숲 또는 산의 뜻)으로 밤숲이 많음 마을이라하여 밤 갓 이라 호칭함.
  • 5.지곡「지시골,지소곡」 : 마을주위에 지초가 많이 있다 하여 지곡이라 불리우며 점차 와전되어 지방사람의 방언으로 지시골이라 호칭항.또 한편 옛날 지물 장사가 많이 살았다하여 지소곡이 라고도 불리움.
  • 6.가지 밭걸「가지 바골」 : 하동아래 학교의 뒷밭으로, 옛날 애장(어린애 무덤)으로 울음소리를 들었다고들 한다. 혹은 이곳에 가장을 했었다함.
  • 7.동뫼산「밀양산」 : 거리 앞에는 오산(吳山)이라는 산이 있고, 오산의 뒷편을 사람들은 밀양산이라 부른다.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언양 고을에 큰 축성공사가 벌어져 몇 해를 두고 계속되니 고을사람들은 지쳐버리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 밀양 고을에 살고 있던 마고할머니가 이 소식을듣고 언양고을 백성들을 가엾게 생각하여 밀양에 있는 산을 뽑아메고 고헌산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 마고 할머니가 산을메고 오다가 들으니 언양고을 축성공사가 이미 끝나버리고 말았다.

    마고할머니는 뽑아오던 산을 도로 밀양으로 가져갈 수도 없고 해서 여기에 내려놓고 가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산을 밀양산이 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밀양산에 묘를 드리기 만하면 마을에 큰 해가 일어났다. 암장한 묘를 찾아내어 멀리 갖다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마을이 평안 했다하니 신기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묘를 드리지 못하게 감시를 했다. 한번은 상북면 지화리에 사는 동래 정씨가 묘를 드리려 하니 마을 사람들은 들고 일어나 묘를 못드리게 하였다. 그랬더니 동래 정씨는 이 산이 본래 밀양의 산이기에 밀양부사에게 세금을 내고 장지허가를 받아 왔다며 밀양 부사가 발행한 장지허가서를 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막을 길이 없었고 동래 정씨는 묘를 드린 후 재산도 일고 인재도 배출되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화는 일어나지를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전에 묘를 드린 사람들은 산주에게 산세를 내지 안고 드렸기 때문에 마고할머니의 노여움을 사 마을에 화가 일어 난 것이라 믿게 되었다 한다.
  • 8.영사재 :거리 頭鷹山 아래에 있으며 현감 유혜지와 군자감정 유영록, 공참 유연창, 한성좌윤 유철추, 호군 유만욱 등 5대 의제 각오로서 후손들이 추모하여 세움.

양등리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버들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양등", 또는 "양동" 이라고 불리우며,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l9l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등리라해서 상남면에 편입되었다가, l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 지역여건 : 면의 서쪽 2Km 지점에 위치하고, 농공단지 호창기계 외 9개 업체가 들어서 있음.
  • 면 적 : 598 Ha (답 - 25.2, 전 - 8.2, 기타 - 564.6)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양등)
  • 종교시설 : 밀봉암,정토 사관자재회

마을소개

  • 1.덕 걸「득걸,텃실」 : 크게 이름 난 사람이 있었다 하여 득걸이라 호칭함.
  • 2.밀봉암 : 옛날 창건한 사찰로서 주위에 봉이 많다 하여 밀봉암이라했으며, 현재의 사찰은 l940년에 건립,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말사 이다. 텃걸 서북쪽에 있음.
  • 3.매봉산 : 대말리 북쪽에 있는 산.
  • 4.우물절들 : 텃걸 앞에 있는 들. 운문사에 딸렸다 함.
  • 5.수성재 : 양등의 금산아래에 있으며, 궁내부시어 김락진과 주사 김태진, 군수 김영진의 3형제 서식처라 하여 세운 것임.

궁근정리

본래 언양군 하북면 지역으로서 옛날 이 곳에 활(홰)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궁근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만리, 화촌리를 병합하여 궁근정이라해서 울산(울주)군 하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궁근정초등학교(1939. 6. 개교)가 있었으나 2016.2.29. 도동마을에 위치한 상북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

 

장성

  • 지명유래 : 옛날 긴 성이 있었다 하여 장성 이라함.
  • 지역여건 : 면의 동북쪽 4km 지점에 위치하고, 고헌산을 뒤로하고, 24호 국도를 접하고 있음.
  • 면 적 : 408.5Ha (답 - 50.4, 전 - 21.2, 기타 - 336.9)
  • 특 산 물 : 청정미나리,미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장성,우만)
  • 종교시설 : 관음사
 

궁근정

  • 지명유래 : 옛날 활나무 정자가 있다하여 궁근정이라 불리우고 있음. 한편 통일신라 이전에 군사무기였던 활과 살을 만들고, 그 만든 무기로 훈련을 하였다는데서 궁근정이라 호칭했다고도 함.
  • 지역여건 : 면의서쪽4km 지점에 위치하고 밀양 경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며, 24호 국도와 접해있음
  • 면 적 : 407.7Ha ( 답 - 37.8 전 - 13.7 기타 - 356.2)
  • 관광명소 : 고헌산
  • 특 산 물 : 미곡, 청정미나리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궁근정초등학교, 경로당(궁근정리),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
 

신기

  • 지명유래 : 궁근정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터라 불리었는데, 후에 한자표기에 의하여 신기라 호칭함.
  • 지역여건 : 면의 동북쪽 4km 지점에 위치하고,고헌산을 뒤로하고,24호 국도와 접해 있음.
  • 문 화 재 : 육경합부(보물)
  • 특 산 물 : 청정미나리, 미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신기,광천그린파크,진우훼밀리아)
  • 종교시설 : 고헌사, 흥덕사, 궁근정사, 진명사, 상북제일교회
 

마을소개

  • 1.숲 피「수피,화촌, 화피」 : 마을 주위에 수목이 많이 있다하여 "숲피" 라하고 , 마을주위에 벼가 많이 생산된다 하여 화촌이라 불리움.화촌과 같은 의미로 화피 라고도 호칭함. 지금은 큰 고목 한 그루만 남아 있는 당수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2.우만 :옛날 이 마을에 힘센 사람이 많이 있어 항우 같은 장사가 살았다 하는 의미로서 우만 이라 호칭함.
  • 3.찬물내기「참물내기,냉수정」 : 찬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참물내기라하고, 찬물이 나는 언덕에 정자나무가 있다하여 냉수정이라 호칭
  • 4.고헌산 : 상북면 궁근정리 소호리와 두서면 차리 경계에 있는산. 높이 1,033 m. 옛날 헌양의 진산으로 현의 이름을 따서 "고헌산"이라 호칭 했다함. 연고사가 있었다고함. 현재 1938년에 건립된 대한불교 태고종말사인 고헌암이 있다.
  • 5.황정자 : 궁근정 남쪽 1km 지점에 흥진이 있고 여기서 서쪽 0.5km 지점에 황정자가 있어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모든 선비와 행인이 쉬어갔다고 함.
  • 6.회약골「화약골,화약고」 : 사시들「사시야」마두벽회약골은 고헌산 밑 골짜기에 있으며, 여기서 동남간 2km 지점에 사시들이 있고, 마두벽은 궁근정 북쪽으로 경북청도군과 월성군산내면을 다니는 고갯길이다.
  • 7.고헌암 : 1938 년 건립된 대한불교 태고종말사 이다.
 

소호리

본래 경북 경주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풀이 많고, 수원이 좋아서 학자들이 소호리라 하였는데,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울산군 두서면에 편입되고, l9l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종동을 병합하여 소호리라 하였는데, 1973년 7월 l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상북면에 편입됨. 소호분교(1923.3.3. 사설강습소 개설, 2016.3.1. 상북초등학교 소호분교)가 있다.

 
  • 지역여건 : 면의 동북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면의 오지 마을로 분지 형태를 띠고 있으며, 태종마을 하천을 중심으로 울산 태종과 경북이 갈라져 있음.
  • 면 적 : 1,554Ha (답 - 68.1, 전 - 37.8, 기타 - 1,448.1)
  • 관광명소 : 고헌산
  • 특 산 물 : 고랭지 채소, 감자, 고사리, 사과 등
  • 공공시설 : 마을회관, 보건진료소, 상북초등학교 소호분교, 경로당(당리, 와리, 대곡, 태종)
  • 종교시설 : 소호교회, 수월정사
 

마을소개

  • 1.대곡 : 「큰골」골이 크다고해서 큰골이 라고 호칭 함.
  • 2.대리 : 마을에서 제일 오랜 부락이 라고 하여 대리 라 호칭함. 당리의 남서 쪽 400 m 쯤 덜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소호리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대리라 하게 되었으나,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큰 불로집 뜰이 모두 소각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소호리에서도 가장 작은 마을로 되어있다.
  • 3.당리 :당수말」당수나무가 마을복판에 있다는 뜻으로 당리 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당수말이 라고 하는 것은 발음변화임. 한편 소호리 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옛날 이곳에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마을의 당제를 모시던 곳으로 당리라 불리웠으며, 현재도 그 숲자리에 소호초등학교가 있고, 운동장 느티나무 거목(巨木)이 있어 지금도 매년 음력당제를 지내고 있다.
  • 4.와리「기와목,잿목 」 : 당리의 서쪽 1.5 km쯤 떨어진 곳으로 재목이라 불리우다 재(題)가 재(기와)로 변해서 와리로 바뀌어 졌다고 함. 한편 와리는 기와를 제조하던 곳이라 하여 와리 또는 기왓목 이라 호칭함. 5. 태종 : 당리에서 북쪽3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여 태종이라 불리움.
  • 5.태종 : 당리에서 북쪽3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여 태종이라 불리움.
  • 6.도장곡「도장골」 : 골짜기의 길을 감추고 있다고 해서 도장골 이라 호칭함.
  • 7.정남들「경남들」: :소호리 북쪽으로 자리잡은 들인데, 부근에 정남사 라는 큰절이 있었다고 함.
  • 8.천제바우「천지방우」 : 당리 부락 남동쪽 300m 떨어진 전답 옆에 400여년전부터 이곳 주민들이 매년 음력6월 15일에 마을의 태평과 농사의 풍작을 축원하는 뜻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
  • 9.소호령 : 두서면 인보리, 차리와 상북면 소호리 경계에 있는 산(높이 669m).
  • 10.백운산 : 두서면과 상북면 소호리 경계에 있는 산(높이 901m).
 

덕현리

운문고개란 큰 고개 아래에 있다 하여 덕현리라 불리우며 본래 상북군 하북면의 지역인데 l9l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삽덕리와 현리를 병합하여 덕현리라해서 울주군 하북면에 편입되었다가, l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석리

  • 지역여건 : 면의 서북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자연마을이 분산되어 있으며, 24호 국도와 접해있음.
  • 면 적 : 1,001,7 Ha (답 - 53.4, 전 - 31.3, 기타 - 917)
  • 관광명소 : 가지산 온천
  • 특 산 물 : 미 곡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석리, 삽재, 소야정)
  • 종교시설 : 보덕사, 덕현사, 가지사, 대원암, 무량암
 

행정

  • 지명유래 : 살구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소야정" 이라 호칭함.
  • 지역여건 : 면의 서북쪽 8Km 지점에 위치하고, 가지산을 뒤로하고, 24호 국도와 접해있음.
  • 면 적 : 949.7 Ha ( 답 - 33.2, 전 - 9.2, 기타 - 907.3)
  • 문 화 재 : 석남사승탑(보물), 석남사삼층석탑(시지정유형문화재), 석남사수로(문화재자료)
  • 관광명소 : 석남사, 가지산
  • 특 산 물 : 청정미나리, 산채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행ㅈ어)
  • 종교시설 : 석남사
 

마을소개

  • 1.석 남 「깐치 말리」 : 큰 바위 남쪽에 있다 하여 석남이라 하고, 까치가 많이 모여 드는 곳이라 하여 깐치말리라고도 호칭함.
  • 2.삽 재「삽리」 :삽리 라는 부락에서 활을 쏘면 이 마을 고개에 꽂혔다 하여 살제라하고 한자의 의미로서 삽리라고도 호칭함.
  • 3.소 야 정 :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소야정" 이라 함.
  • 4.불당「신리」 : 석남사 부처님 집 아래 있다 하여 불당이라 불리우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리" 라고도 호칭함.
  • 5.살 터「시현」 : 가지산에 있으며, 옛날 이 마을에서 임진왜란 때 밀량과 상북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여기에 주둔하면서 화살을 만들어 쏘았다 하여 살터라 불리우며, 한자표기에 의하여 시현이라고도 호칭함.
  • 6.석 남 사 : 영산명승인 가지산을 택하여 호국축도를 드리기 위하여 신라 제 41대 현덕 왕 16 년(서기 824)에 도의 국사가 창건하였다. 이조 제18대현종 15 년(서기1674)에 탁령, 선철등의 선자들에 의하여 중건되고, 또 이조 제23대 순조3년(서기1803)에 청허, 수일등의 선사가 중수하였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황폐해진데다가 1950년 6.25 한국 동란으로 완전 파괴 되고 말았는데, 비구니 인홍스님 이주지로 부임하여 대웅전, 극락전, 부속건물 등을 중수 했다. 석남사에는 보물 제369호로 지정된 석조부도와 도지정문화재인 삼층석탑이 보존되어 있으며, 여승수도의 도장으로 금계를 엄수하는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l5교구 말사이다. 년간 관광객수은 약 4 만 명이 된다.
  • 7.석 남 사부도 : 보물 제 369 호 :이 부도는 제작 년대는 10 세기 경인 신라말 혹은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신라 제4 대 헌덕왕 때 도의국사가 석남사를 창건했다 하며 도의국사의 사리탑이 라고도 한다.

    높이 3.53m 인 이 부도는 8 각 원당형으로 된 우수한 작품이다. 하대석주위 에는 사자와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중대석 에는 안상 속에 화문대를 둘렀고, 8 번 연화사 위에 놓인 탑신석 전후에는 호형이 조각되고, 전면 호형좌우에는 선명하게 신장입상이 양각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폭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것이 고준한감을 주며, 안정감이 결여되고 있으나 , 각종 부재가 완전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 부도는 1962년 5월에 해체하여 원형으로 보수한 것이다.
  • 8.석남사 삼층소형석탑 : 사적22호 : 이 석탑은 신라 제4l대 현덕왕l9년(서기1824)에 도의국사가 석남사를 창건하면서 호국염원을 위해 축탑한 것으로 전하며,l962년5월에 복원한 조그마한 탑인데 화강석8각삼층석탑 이다. 높이 2.7m, 넓이 3.6m이다.
  • 9.석남사 삼층석탑 : 도 지정문화재 : 신라 헌덕왕 16년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l5층의 석탑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것을 1973년 스리랑카의 사바리싸스님이 부처님사리3알을 모셔와서 2알은 가야산 묘길 봉에 봉안하고, 1알은 가지산 석남사의 석탑에 봉안하면서 삼층으로 복원하였다.[높이17m,기단석 4.57m]
  • 10.쌀 바위「미암」 : 석남사 뒷산인 가지산 중턱에는 쌀 바위라고 불리우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이 바위 밑에서스님 하나가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수도스님이 먹을 양식을 구하려고 마을로 내려가서 탁발을해 날랐다.

    그런데 하루는 스님이 아침기도를 올리고 나서 바위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하얀 백미가 한 됫박 가량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유심히 들여다보니 바위틈에서 쌀알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기뻐하며 부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자기의 수도하는 지극한 정성을 가상히 여기고 탁발을 면하게 해준 것이라 알았다.

    스님은 끼니때마다 떨어진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 먼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다음에 자신이 먹었다. 그런데 쌀알이 떨어지는 도수가 일정하고 끼니때마다 가서 보면 꼭 한사람의 양식밖에는 되질 않았다. 스님은 감질이 나고 견물생심이라 스님은 욕심이 생겼다.

    쌀알이 떨어지는 바위 속에는 많은 쌀들이 있을 것이고 떨어지는 구멍이 작아서 한 알씩 밖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고자 그 구멍을 쑤셨다.

    하지만 지금까지 떨어지던 쌀알은 간 곳이 없고 쌀 대신 물줄기가 주루룩 떨어지고 말았다. 부처님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스님은 그때서야 크게 뉘우치고 부처님 앞에 사죄 하였으나 영영 쌀알은 떨어지지 않고 하루에 한 사람이 먹을 물 밖에는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 11.가지산 : 덕현리와 밀양군 산내면 삼양리,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1,240m . 신라 홍덕왕시대 전라남도 보림사에서 가지선사란 중이 와서 석남마을이 이 산 기슭에 숨어 터를 잡았다하여 가지산이라 불리웠다함. 사철이 상북현 서쪽 석남동에 난다고 했음(세종실록 지리지). 석남사도 이 산줄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귀바우(1,117 M)의 암봉과 백연폭포를 안고 있다.

    또한 가지산은 울주지구 (가지산, 석남사)와 밀양지구(산내면, 가지산)및 양산지구(취루산, 통도사, 내원사)와 함께 l979.l l.5 경남의 도립 공원으로 지정됐다. 특히 이 산에서는 봄철이 되면 松흉와覆益子딸기가 대량으로 나오기 때문에 많은 외래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 가지산은 서남쪽으로 천황산, 신불산과 이웃하면서 나란히 태백산맥의 남단을 매듭짓고 있다.
  • 12.운문령 : 덕현리에서 경북 청도군 운문면으로 넘어 가는 고개. 매우 높아서 늘 구름이 낀다 함.(높이 1,107 m)
  • 13.운문산 : 상북면과 청도군 운문면과 밀양군 산내면 격계에 있으며, 가슬현이라 하였다. 높이 1,200m . 억산(944m)을 지나 합천의 가야산과 줄을 잇고 있다. 운문사 등의 여러 사찰이 있다.
  • 14.덕산재 : 가의 대부 김수의의 묘실로서 정 만조가 쓴 글이 있다.
 

이천리

이 마을은 낙동강 상류로서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이천"이라 불리우며, 본래 언양군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천리"라 해서 울산(울주)군 상남면에 편입 되었다가, 1928년 상북면에 편입됨.

 
  • 지역여건 : 면의서쪽 12km지점에 위치하고 산가 오지마을로 30 여 개의 음식점 및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관광지로 행락객이 많이 찾고, 양산 원동면과 접해있음.
  • 면 적 : 2,849 Ha (답 - 12.2, 전 - 63.1, 임야 - 2,661, 기타 - 887.3)
  • 문 화 재 : 천황산 요지군(사적)
  • 관광명소 : 신불산 자연휴양림, 파래소폭포, 천황산 요지군, 철구소
  • 특 산 물 : 표고버섯, 흑염소, 장아찌
  • 공공시설 : 마을회관, 경로당(이천), 울산광역시 학생교육원
  • 종교시설 : 백련암, 용주암, 장안사
 

마을소개

  • 1.이천대리「배내큰마을」 : 이천대리는 이천리의 유래와 같으며, 한자복칭으로 배내 큰마을이라 호칭함.
  • 2.주계「주개, 주개듬, 주게대미」 : 옛날 9년 홍수에 배로 이곳에 다닌 곳이라 하여 주개 또는 주개듬이라하며, 혹은 배내 부락 앞의 바위로 된 산 덩이가 떠내려오는 형상이라 하여 불리의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3.내리정「진전」 :정자나무가 내리 섰다 하여 내리 정이라 하고,밭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진전이라 호칭.
  • 4.죽전「대밭마을」 : 대 밭이 있다하여 죽전이라하고 또는 대밭마을 이라 호칭함.
  • 5.백 련 「백연」 : 옛날 이곳에 백연정 이라는 옛정자가 있어 마을이름을 백연 라 호칭함.
  • 6.신불산 :상북면 이천리, 등억리와 삼남읍 가천리 경계에 있는 산(높이1.209m). 6.25동란시에는 공산 공비들이 신불산을 거점으로 양산군 일부지방과 울주군 서부 5개면을 할동지구로 하여 준동이 심했었다.
  • 7.천황산과 요지군(사적제 129호): :천황산은 이천리 와 경북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 산내면 남명이 경계에 있는 높이1.189m의 산. 천황산은 유명한 사자평고원의 광활한 초원을 재탄산으로 펼쳐놓아 그사이 금강폭, 층충폭, 사자폭, 비호폭등의 절정을 계류와 함께 만들어 놓고 표충사에서 밀양길을 터놓았다.

    석남사에서 서쪽으로 밀양군과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 밑 표고 9백m의 넓은 고원지대에 이조중기(17세기)의 것인 철화문을 반출하는 거대한 백자요지가 5~6기 있다. 아마 우리나라의 요지 중에서 가장 험준하고 높은 곳에 있는 요지일 것이다. 여기에서 번조된 그릇은 순백자가 대부분이나 드문 드문 철화문 백 자편이 섞여 있으며, 문양은 소박하고 치종한 초문과 원권문, 원점문등이 있다. 천황산에는 사기를 굽던 골짜기인 사기점골(사이벌)과 옛날 의병이 일어 났을 때 쉰 명(50명)이 들어가 싸웠던 바위 굴인 신(산)동지 굴과 범이 살았다는 바위와 골짜기인 뱀바위골, 배내 부락 앞에 있는 바위로 된 산 덩이가 배가 떠나오는 형상이므로 지어진 주계 더미 등이 있다.

    요지군이 왜 외롭고 높은 산정에 그릇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도기 원료인 흙과 연료에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도요지는 근래에 와서 일본인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는데 까닭은 일본의, 라는 도자기의 원조가 이 도자기 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 8.능동산 : 덕현리, 이천리와 경북 밀양군 산내연 남명리 경계에 있는 산(높이 982m)
  • 9.역적치발(밭) : 왕방산의 꼭대기(표고995m)를 가리킨 말로서 옛날부터 이곳에 무덤을 쓰면 역적이 난다고 전한다.
  • 10.심종태바위 : 천황산 기늙에 심종태바위가 있다. 바위아래에는 수십 명이 들어 가 앉을 수 있는 석실이 있다.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효성이 지극했던 심종태라는 사람이 부모의 제사에 쓰려고 송아지 한 마리를 길렀는데 하룻밤에 그만 송아지를 도적이 가지고 가 버렸다. 심종태는 도적이 몰고간 것도 모르고 송아지가 제 발로 나간 줄로만 알고 이산 저산 찾아 헤맸다.

    이 바위굴에서 도적이 썩 나서면서 ”우리는 이 천황산을 거점으로 하여 밀양, 동래, 양산. 언양할 것 없이 주름잡고 다니는 밤손님이야” 하였다. 심종태는 ”간밤에 송아지가 나가 버려서 찾아 헤매다 여기까지 오게된 것입니다” 라고 했다.

    도둑은 ”효성이 지극하구나.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 송아지를 잡아먹었구나.” 심종태는, 이제는 부모님 제사에 무엇을 놓고 지내나” 하고 한탄을 했다. 도둑은 ”우리가 아무리 밤손님이지만 어찌 너같은 효자의 송아지를 잡아먹고 그냥 있겠느냐” 하며 두목은 금 삼십냥을 심종태에게 주더라는 것이다” 심종태는 송아지 두 마리를 사다가 한 마리는 잡아서 부모님의 제사에 쓰고 한 마리는 길렀는데, 이 송아지를 길러서 나중에는 수십 마리로 늘어나 부자가 되었다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심종태바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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