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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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소개

웅촌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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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촌면 개요

웅촌면(熊村面)은 진한(辰韓)의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우시산국(于尸山國)은 울뫼나라로 그 성도(城都)는 검단(檢丹)과 은현(銀峴)의 두가지 설이있다.

신라 탈해왕(脫解王)때의 거도(居道) 가마숙(馬叔)이란, 계락을 써서 쳐들어오니 이기지 못하고 동래(東萊)의 거칠산국(居柒山國)과 같이 멸망하였다. 신라 초에는 이곳에 우화현(于火縣)을 두었다가 경덕왕(景德王) 16년(757) 에 이름을 우풍현(虞風縣)이라고 고쳐 동안군(東安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태조(太祖)때 하곡(河曲), 동진(東津)의 두 현 및 동안군(東安郡)과 같이 흥례부(興禮府)의 땅이 되어 현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조선 중엽부터인 듯 고을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면(西面)이라 하였다가 말엽에 와서 웅촌면(熊村面)이라 개칭하였다. 웅촌면(熊村面)이라 함은 이 면을 진압하고 지키는 진산(鎭山)인 운암산(雲岩山)의 모양이 곰과 같이 닮았다 하여 웅촌(熊村)이라 하였다고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곰을 신성시하는 원시신앙을 가졌던 예맥족(濊貊族)의 주처에는 곰터라 하여 웅자가 붙게 되므로 웅촌(熊村)은 고마족이 세운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왕읍(王邑)이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고종(高宗)때(高宗, 1년)에는 웅촌면, 동31년의 邑誌에는 웅상·웅하에 이르러 웅상(熊上)·웅하(熊下)의 두 면으로 갈라 웅하면(熊下面)이라 하였다. 면의 위치가 군치(郡治)와 가깝고 북쪽에 위치하니 웅상(熊上)이 될 듯하나 아마 신라 소사(小祀)의 한산으로 받들어 온 우불산(于弗山)이 저쪽에 있으니 웅하(熊下)라 하였으며.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웅상면(熊上面)을 양산군(梁山郡)에, 신리(新里)를 청량면(靑良面)으로 넘겨 주었으며 면의 이름을 웅촌면(熊村面)이라하였다.

지역적으로 청량면, 삼동면, 온양읍, 양산시 소주동과 서창동에 접해있는 중산간지대로 울산 부산간 7호선 국도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시내에 직장을 둔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회야댐 상류에 인접해 각종 규제로 인하여 지역개발이 지연되고 있어, 인근 양산시 소주동, 서창동의 발전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낙후되어 있다.

현재의 웅촌면은 면적이 51.9㎢이며, 곡천리, 검단리, 은현리, 고연리, 대대리, 초천리, 통천리, 석천리, 대복리 9개 법정리, 27개행정리, 92개 반을 가지고있다.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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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상징심볼
전체적인 도안 - "웅"을상징
 
 
면조

면조 面鳥

제비
몸길이 약 18cm이다.
몸의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붉은 갈색, 나머지 아랫면은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
꼬리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어린 새는 긴 꼬리깃이 다 자란 새보다 짧으며 전체적으로 색이 희미하다.
 
 
읍화

면화 面花

들국화
벌판에 저절로 나는 산국화.
 
 
읍목

면목 面木

고연리 갈참나무
이 25m 에 달하며 수피는 흑갈색 또는 회색으로 그물처럼 거칠게 갈라진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도란형으로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고 잎 뒷면에 별모양의 털이 밀생한다.
잎 표면은 광택이 있으며 1~3cm 정도의 잎자루가 있다.
 

웅촌면가

면가

웅촌면가

웅촌면가 가사
김정호 작곡 / 박수동 작사 / 박영기 편곡
 
1절
운암산 굽어보는 곰내누리밝은 햇살
이곳은 그 옛날 나라세운역사의 터
슬기롭고 인정많은 사람사는 우리고장
이땅을 자랑하리 사랑하리 우리 웅촌
풍요로운 황금들녘 풍치좋은 운홍계곡
길이길이 지키리 나의사랑 우리 웅촌
 
2절
풍요로운 황금들녘 풍치좋은운홍계곡
우리조상 발자취 굽이굽이서려있고
나날이 뻗어가는 활기찬살림살이
이땅을 자랑하리 사랑하리 우리 웅촌
풍요로운 황금들녘 풍치좋은 운홍계곡
길이길이 지키리 나의사랑 우리 웅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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