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마을안내

전통과 문화의 산실 외고산옹기마을
옛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입니다.

마을역사

옹기마을안내 마을 역사
history 외고산옹기마을의 역사

온양읍 고산리에 위치한 옹기마을은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운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에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옹기수요가 많이 필요했다.

마침 경상북도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하고 있던 한국 칸가마(노부리가마)의 창시자이고, 옹기 장인인 허덕만 씨가 부산이 가까운 곳을 찾다가 이곳에 와서 땅을 얻어, 공장을 짓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때가 1957년이다. 보릿고개로 어려운 시기라 옹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급속도로 마을이 성장했다.

이때는 옹기를 남창 역을 통해 서울로 실어 올리기도 하고 미국 등 외국에도 수출했다. 마을이 점점 번창하자 1970년대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동(分洞), 주민의 세대수가 200여 세대가 넘었다. 그 후 산업화가 되면서 플라스틱 용기가 생기면서 옹기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창시자 허덕만 씨가 작고하고 그 제자들이 하나하나 공장을 일으켜 현재의 한국 최고의 옹기마을을 만들었다.

마을 유래

  • 온양에서 언제부터 옹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지금은 없지만 남창 태화동(현 남창고등학교 부근)에 1910년 이전까지 옹기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고산리의 옹기업은 1950년대 경북 영덕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 씨가 한국전쟁을 피해 이곳에서 옹기를 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1950년 ~
2000년 이후
1950년대 말
전국각지에서 옹기장이 모임, 옹기촌을 이루며 옹기산업 성행
1960년대~70년대말
옹기산업 최대 전성기
1970년대 이후
플라스틱의 대체용기가 출현함으로 옹기산업 부진
1980년
일본수출로 인해 옹기산업 재도약
2000년 ~
2000년 11월 울주군 마을에 옹기회관 건립, 그 이후 매년 10월 옹기 축제개최